수영장 할머니들의 걱정 "나도 잘리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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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8-16 15:00 조회 8,980 댓글 0본문
"누구세요?" 전화를 건 A노인이 나에게 물었다. "저 수영장 다니는 사람요.", "수영장 누구요?" 난감했다. A노인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면서 문자까지 남겨 달래서 남겨뒀는데 누구냐고 물으니. 자초지종을 한참 설명했다. 그제야 기억해 내곤 미안하다 하신다.
A노인은 같은 장소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유일한 동료다. 볼 때마다 나를 이쁜이, 귀염둥이라 부른다. 우리는 서로 못 가는 날을 대비해 번호를 교환했다. 노인은 오전 일을 까맣게 잊었다고 했다. 몇 번을 얘기해도 마치 처음 들은 사람처럼 반응할 때도 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기억력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수영장에 나오지 못하게 된 노인
기억력은 나이 들수록 쇠퇴한다. 나 역시 메모하고도 잊는다. 물건을 잃어버린 적도 많다. 지갑은 벌써 두 번이나 잃었다. 언제 잃었는지도 모르는 게 문제다. 우산이나 양산은 말할 것도 없다. 휴대폰은 손에 쥐고도 찾는다. 이 좁은 방에 갈 데가 어딨다고. 제일 무서웠던 건 현관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다. 외출하려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방 구석구석 서랍 옷 주머니 가방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쭈뼛했다. 결국 포기하고 문밖을 나갔는데 현관 입구에 열쇠가 떡하니 꽂혀 있다. 밤새 거기 꽂혀있었던 것이다. 자기 전에 항상 문단속을 하는데, 하면 뭐 하는가. 문밖에 열쇠를 꽂아두고선. 아찔한 순간이었다. 치매검사를 해보기도 했다.
셔틀버스 안이 웅성거린다. 평소와 달리 잡담 분위기가 아니다. 노인 한 명이 119에 실려 갔다고 한다. 쓰러져서. 수중걷기하던 노인인데, 담당자가 더이상 수영장에 나오지 말라 했다고 한다. 어쩐지 오늘 안 보였다. 노인은 타인의 옷을 입고 벗었다가 들키기도 했고 버스 운행 중에 이동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치매라는 것. 노인은 수중걷기 할 때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 휘저으며 다녔다. 좀 독특하다 싶었는데 치매였다니. "수영장 오는게 낙일 텐데" 하면서 노인들은 안타까워했다.
"나도 잘리면 어떡해" 걱정하는 노인도 있었다. 시력이 안 좋아 다른 사람 옷을 착각했을 텐데 그런 이유로 잘리다니. 사람들은 그 노인이 매일 앉던 맨 앞 좌석 빈자리를 보며 허전해했다. 남 일이 아니라며.
한순간에 삶을 잃는 치매는 늙어가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이다.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아 한다. 단순한 기억뿐 아니라 생존 기억까지 잃는다. 최소한의 삶을 이어가는 생활 방식을 모두 앗아간다. 치매 같은 뇌질환은 보통 고령자에게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고향 후배는 40대 초반임에도 파킨슨병을 얻어 두문불출한다. 친절했던 동네 의사도 치매에 걸렸다. 의사는 자신이 치매인 줄 인지하지 못했다. 의사의 이상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 환자들이 점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치매라는 '프레임'
'치매'라는 진단, 낙인을 받으면 프레임 속에 갇히는 것 같다. 나는 B노인과 매일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긴 해도 성격 탓인 줄 알았다. '그 노인 치매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편견 같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옷차림, 어수선한 행동, 강박적인 말. 그럼에도 구체적인 말을 듣기까지 B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혼자 살던 B노인은 치매 판정을 받았음에도 '나는 치매가 아니다'라며 약을 거부해 고혈압약에 같이 섞어 속여서 먹게 했다는데 그마저도 잘 먹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B노인 자식은 우리 집으로 간간히 전화를 걸어와 B노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이었다. 한동안은 직접 모셨다가, 다시 시골에 홀로 남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기억 한 조각이라도 살아있는 한 치매를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양병원에 가는 그 순간까지 아니라고 소리칠 것이다. 몸부림치며 강하게.
요양병원에서 실습할 때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치매가 젤 무서운 거 같아.", "글쎄. 무슨 소리. 무섭고 힘들다는 건 타인의 시선이지. 정작 자신은 행복할걸. 아무것도 모르잖아. 모든 게 맘대로잖아." 그렇게 말한 동료가 있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치매 환자에 대한 시선을 달리했다. 아니, 달라졌다.
동료 말대로 치매환자가 행복한지 들은 적은 없다. 미안하지만 물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치매'라는 고정관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결코 안타깝거나 동정의 시선은 아니라는 것.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모른다고, 굼뜨다고, 무시하고 사람 취급 안 하는 건 더더욱 예의가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다. 감정이 있는.
"할매 날이 추워. 옷 두껍게 입고 다녀. 겨울옷." 이렇게 말하자. 거리를 배회하던 짱아 할매는 웃으며 "고마워"라고 했다. 평범했다. 화내지 않는 할매의 반응에 놀란 건 나였다.
http://naver.me/I5cqMu1E
A노인은 같은 장소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유일한 동료다. 볼 때마다 나를 이쁜이, 귀염둥이라 부른다. 우리는 서로 못 가는 날을 대비해 번호를 교환했다. 노인은 오전 일을 까맣게 잊었다고 했다. 몇 번을 얘기해도 마치 처음 들은 사람처럼 반응할 때도 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기억력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수영장에 나오지 못하게 된 노인
기억력은 나이 들수록 쇠퇴한다. 나 역시 메모하고도 잊는다. 물건을 잃어버린 적도 많다. 지갑은 벌써 두 번이나 잃었다. 언제 잃었는지도 모르는 게 문제다. 우산이나 양산은 말할 것도 없다. 휴대폰은 손에 쥐고도 찾는다. 이 좁은 방에 갈 데가 어딨다고. 제일 무서웠던 건 현관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다. 외출하려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방 구석구석 서랍 옷 주머니 가방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쭈뼛했다. 결국 포기하고 문밖을 나갔는데 현관 입구에 열쇠가 떡하니 꽂혀 있다. 밤새 거기 꽂혀있었던 것이다. 자기 전에 항상 문단속을 하는데, 하면 뭐 하는가. 문밖에 열쇠를 꽂아두고선. 아찔한 순간이었다. 치매검사를 해보기도 했다.
셔틀버스 안이 웅성거린다. 평소와 달리 잡담 분위기가 아니다. 노인 한 명이 119에 실려 갔다고 한다. 쓰러져서. 수중걷기하던 노인인데, 담당자가 더이상 수영장에 나오지 말라 했다고 한다. 어쩐지 오늘 안 보였다. 노인은 타인의 옷을 입고 벗었다가 들키기도 했고 버스 운행 중에 이동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치매라는 것. 노인은 수중걷기 할 때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 휘저으며 다녔다. 좀 독특하다 싶었는데 치매였다니. "수영장 오는게 낙일 텐데" 하면서 노인들은 안타까워했다.
"나도 잘리면 어떡해" 걱정하는 노인도 있었다. 시력이 안 좋아 다른 사람 옷을 착각했을 텐데 그런 이유로 잘리다니. 사람들은 그 노인이 매일 앉던 맨 앞 좌석 빈자리를 보며 허전해했다. 남 일이 아니라며.
한순간에 삶을 잃는 치매는 늙어가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이다.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아 한다. 단순한 기억뿐 아니라 생존 기억까지 잃는다. 최소한의 삶을 이어가는 생활 방식을 모두 앗아간다. 치매 같은 뇌질환은 보통 고령자에게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고향 후배는 40대 초반임에도 파킨슨병을 얻어 두문불출한다. 친절했던 동네 의사도 치매에 걸렸다. 의사는 자신이 치매인 줄 인지하지 못했다. 의사의 이상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 환자들이 점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치매라는 '프레임'
'치매'라는 진단, 낙인을 받으면 프레임 속에 갇히는 것 같다. 나는 B노인과 매일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긴 해도 성격 탓인 줄 알았다. '그 노인 치매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편견 같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옷차림, 어수선한 행동, 강박적인 말. 그럼에도 구체적인 말을 듣기까지 B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혼자 살던 B노인은 치매 판정을 받았음에도 '나는 치매가 아니다'라며 약을 거부해 고혈압약에 같이 섞어 속여서 먹게 했다는데 그마저도 잘 먹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B노인 자식은 우리 집으로 간간히 전화를 걸어와 B노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이었다. 한동안은 직접 모셨다가, 다시 시골에 홀로 남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기억 한 조각이라도 살아있는 한 치매를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양병원에 가는 그 순간까지 아니라고 소리칠 것이다. 몸부림치며 강하게.
요양병원에서 실습할 때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치매가 젤 무서운 거 같아.", "글쎄. 무슨 소리. 무섭고 힘들다는 건 타인의 시선이지. 정작 자신은 행복할걸. 아무것도 모르잖아. 모든 게 맘대로잖아." 그렇게 말한 동료가 있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치매 환자에 대한 시선을 달리했다. 아니, 달라졌다.
동료 말대로 치매환자가 행복한지 들은 적은 없다. 미안하지만 물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치매'라는 고정관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결코 안타깝거나 동정의 시선은 아니라는 것.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모른다고, 굼뜨다고, 무시하고 사람 취급 안 하는 건 더더욱 예의가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다. 감정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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